친일체육인은 없는가?
식민지 시절을 경험한 우리나라는 역사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청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친일인물이나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서 우리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대표적인 잔재가 친일파라고 할 수 있다. 출세와 살아남기 위해서 일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동의하면서도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있고, 일본에 저항하거나 우호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있다.
다른 분야를 떠나서 우리가 전공하고 있는 체육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친일체육인에 대하여 간헐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주장한 일은 적었다. 식민지 체육에서 먼저 언급하고 가야 할 문제가 바로 친일체육인이다. 하지만 누가 친일 체육인이라고 단정하여말할 수 있는 기준이 아직까지는 없어 결정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고 친일파에 대한 인명목록이 만들어졌지만 유독 체육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체육은 친일과 관련성이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일체육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첫째, 친일체육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친일체육인이라고 하는 인물들이 우리들의 영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친일체육인을 선정하려는 의도는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공과를 분명히 하려는 의도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를 통해서 평가가 행해져야 한다. 한 예로 이해관계에 있는 체육계가 배제된 상태에서 역사가들은 역사적 기록과 자료 검토를 통해서 친일인물 선정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예외적인 측면들이 존재하지만 그 예외적인 것들에 대한 종합적 검토를 통해서 재평가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정하기 어렵다고 시도해보지도 않고 방관하는 것 역시 친일체육인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친일체육인 선정은 특정 인물에 대하여 가하는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일체육인을 청산하는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논리에서 시작된다. 청산하지 않으면 개인의 이익을 위한 반국가적, 반민족적 행위가 넘쳐나고 정당화될 수 있다. 반복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역사를 청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기가 빠를수록 좋은 데 우리는 이미 그 시기를 놓쳤다. 그렇지만 묵인하고 방관할 수 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대부분 친일인물들이라는 사회 구조의 특성이 있다. 이들은 친일파 청산을 피해 다시 상류층에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 정부를 탓할 수밖에 없다. 일본을 대신해서 우리를 지배하게 된 미군정이 일본 식민지 시절에 관료를 했던 사람들을 행정마비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냥 그대로 고용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행정적 공백을 그냥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 행정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그대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미군정의 정책은 공백을 메우고 지속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친일인물도 문제지만 친미인물도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체육계의 친일인물은 빠져있다. 무용계의 최승희가 포함되어 있지만 유독 체육 분야는 친일인물에 대한 선정에서 예외가 되었다. 그것은 누구를 친일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고, 한 사람의 전체 삶을 조명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며, 체육계의 친일인물들은 대개 광복 후에 대한체육회의 중심의 인물이 되었기에 이들에 대하여 친일 체육인이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친일체육인하면 특정인물을 말한다. 그는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대표 선수로 일본의 영광을 위해 달렸다. 과연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첫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뛸 수밖에 없었다. 이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숙고해봐야 할 문제이다.
반론을 들어보면 어쩔 수 상황에서 일본을 위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선수에게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올림픽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다. 개인의 명예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개인이 참가하는 올림픽이다. 최근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로 안(안현수)은 역적이나 매국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좋아하는 스케이트를 자유롭게 탈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국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조국은 없다. 다만 운동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러시아로 귀화였다. 그 결과 올림픽 3관왕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빅토르 안을 축하해주고, 국내에서는 빅토로 안에 대한 중계를 보고 비난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두 사람 모두 국가를 저버리고 올림픽에 참가하여 메달을 획득하였다.
어쩔 수 없는 식민지시기와 현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한다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적어도 운동선수에게 국적은 중요하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얼마나 경기에 최선을 다했느냐에 따라 달라 질수 있다.
선수에게 국적은 선택일 뿐이다. 선수에게 조국을 묻는 것은 세계화된 지금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자신에게 운동하기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국가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이다. 안현수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러시아를 택한 것뿐이다. 아마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에게 조국을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는 올림픽 참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자신의 신체적 탁월성을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도전하고 그것을 넘어섰을 때 인간승리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 참가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가대표가 돼서 올림픽에 나가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한다.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국내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다. 공정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지게 되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추성훈 선수이다. 그는 일본국적을 포기하고 한국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하여 한국에 왔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실력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파벌주의에 의해서 탈락을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추측은 가능하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남아 있는 길은 일본국적을 취득해서 일본 대표로 출전하는 길뿐이었다. 그는 일본대표 선수가 되어서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다. 한국으로 서는 우리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운동선수에게 국적이 중요할까? 국적보다 자신의 신체적 탁월성을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적을 포기하고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 출전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의 출전은 하나의 꿈이자 목표이다.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이 세계에서 제 1인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추성훈과 안현수는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더 간절했기 때문에 귀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고 다른 편으로 가는 것에 대하여 배신행위라고 한다.
더 이상 선수를 국가의 상징으로 조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수는 그저 개인 자격으로 자신의 신체적 탁월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밖에 없다. 귀화를 했다고 욕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면 그만이다.
참조 : 체육인가? 스포츠문화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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